韓, 국산부품 50% 초과 시 REC 가중치 추가지급 삭제 추진
경쟁력 없는 국내 풍력산업 직격탄, "산업기반 흔들" 우려
그나마 경쟁력 있는 국산 케이블도 中 파상공세에 노출 위기
업계, "해외는 IRA·CRMA 등 자국산업 강화에 혈안, 왜 우리만"

브라질 동부 오조리우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양진영 기자
브라질 동부 오조리우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양진영 기자

“국산화 비율(LCR;Local Content Rule)에 따른 REC 가중치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지어야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가중치가 사라진 후 가격경쟁력을 따져서 가장 저렴하고 성능 좋은 제품을 사용하는 게 회사 전략상 맞지 않을까요.”

해상풍력과 관련된 '공급인증서 발급 및 거래시장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 내용을 접한 글로벌 업체들의 반응이다. 

최근 한국에너지공단은 ‘공급인증서 발급 및 거래시장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 철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풍력 개발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의 국산화 비율이 50%가 넘는 경우 REC 가중치가 적용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통상법에 따른 기업 차별과 국산화 비율이 REC 가중치뿐만 아니라 고정가격계약에서도 가점의 기준이 된다는 게 철회의 주된 이유다.

업계는 국산화 비율 연계에 따른 가중치가 사라지면 최근 검토되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생산시설 구축과 해외 풍력 기자재 간의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풍력업계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풍력산업이 직격탄를 맞게 되고 결국 산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업체 대표의 고백…“회사에는 좋지만 한국 풍력은 망하는 길”

글로벌 탑티어인 풍력제조업체의 한국지사를 이끄는 A 대표는 “당장 우리도 국내에 지으려던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된 것처럼 LCR 비율에 따른 가중치를 철회하는 것은 한국 풍력 산업에 독약이 될 것”이라며 “회사 차원에서는 이득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A 대표는 국산화 비율이 REC 가중치와 고정가격계약에 적용되는 것도 중복사례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REC와 입찰의 성격 자체도 다르고 고정가격에서의 평가 기준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풍력발전의 고정가격계약 입찰을 진행했다.

고정가격계약 입찰의 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에는 ‘산업·경제효과(국내 경제·공급망 기여 효과)’라는 항목이 있고 이에 따른 배점은 최대(매우 우수) 16점이다.

A 대표는 “국내 공급망 활용에 따른 배점 구간은 있지만 어느 정도 국산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고 풍력 입찰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며 “기업이라면 불명확한 고정가격 계약보다는 계산이 가능한 REC부터 계산하고 LCOE(균등발전원가)를 먼저 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입찰 참여 여부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데 확실하게 계산되는 REC 가중치가 없다면 고정가격계약 입찰만 보고 국내에 공장을 지으려 하겠느냐”며 “LCR에 따른 가중치를 없애는 것은 우리나라가 잘못 생각한 것이며 절대 이중 혜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제 경쟁력 갖춘 전선도 中 공세 우려

풍력공급망에서 전선(케이블)은 타워, 하부구조물 등과 함께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 풍력 업체들 또한 국내 진출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국내 공급망의 우수성을 설명할 때 항상 언급하는 기자재 중 하나다.

그러나 전선업계는 국산화 비율에 따른 REC 가중치가 없어지면 최근 국내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 보조금이 감소함에 따라 최근 중국 전선업체들이 해외 시장의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국산화 비율을 포기해버리면 그야말로 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선업계에 따르면 중국 1위 전선업체인 형통광전이 현재 국내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또 다른 중국의 케이블 업체인 ZTT도 국내 풍력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울러 다수의 풍력발전 프로젝트에서 수주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국내 전선업계의 걱정이 커진 상황이다.

전선업계는 특히 국내 풍력 공급망의 구조상 전선은 경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터빈과 같이 우선순위가 높은 제품은 공급자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반면 해저케이블은 중요성이 간과됨에 따라 잔여 공사비 내에서 발주처에서 제시하는 낮은 금액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낮은 품질에 가격경쟁력만 갖춘 중국업체의 제품들과 비교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해저 공사의 특수성을 감안해 유동적으로 사업비를 책정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자투리처럼 남은 사업비 내에서 높은 품질을 시공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받고 있다”며 “국내시장 진출을 노리는 중국 전선업체라면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전선업체가 참여한 가격이 기준이 될 것이고 결국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인해) 시장구조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또한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나갈 때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선업계는 결국 자국 내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면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선업체 관계자는 “전선은 초반에 자국 내에서 지원받으며 경쟁력을 키운 뒤 해외에 진출해 성공하는 사례”라며 “LCR의 가중치가 사라지면 국내 전선업계가 미래 풍력산업에 대비한 경쟁력을 키울 수 없고 해외에 나갈 때 취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덴마크의 코펜힐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의 모습.(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양진영 기자
덴마크코펜힐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양진영 기자

◆국내 풍력업계 “국산 부품 안 쓰면 미래도 포기하는 것”

풍력발전에 국산 부품이 들어가는 의미를 놓고 국내 풍력업계는 ‘미래’를 얘기한다.

국산 부품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시장 활성화의 차원을 넘어서 미래를 위한 데이터를 쌓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풍력업체의 B 대표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부품을 들여와서 조립하는 수준에서 발전해 이제는 부품을 국산화해가며 설계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며 “풍력발전도 국산 제품이 쓰이지 않는다면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B 대표는 국산화가 풍력발전기 건설 후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지는 유지보수(O&M;Operation &Maintenance)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다.

B 대표는 “국산 부품이 쓰여야 운영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한 유지보수 기술도 발전시킬 수 있다”며 “외산 부품이 들어가면 그 업체들이 중요한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와 유지보수 시장을 넘겨주겠나. 결국 유지보수 시장도 다 넘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시장 버리고 보급에만 중점…태양광 전철 그대로 밟나

신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가 국산화 비율에 따른 가중치를 삭제하는 것이 태양광 발전업계의 아픔을 답습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과거 태양광 산업과 시장의 활성화보다 보급에 치우친 정책을 펼친 바 있다. 그 결과 값싼 중국산 제품에 시장을 내어주게 됐고 가격과 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국내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았다.

정부의 이번 검토가 국내 산업의 활성화를 간과한 결과인 만큼 풍력산업도 자생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시행 중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최근 초안이 공개된 EU(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CRMA)'등 해외 국가들이 자국 내 산업 보호에 나선 상황에서 ‘통상’을 이유로 시장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붙인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EU상공회의소 조차 국산화 비율에 따른 가중치의 삭제는 필요없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EU에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3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낸 베스타스의 덴마크도 포함돼 있다.

정권이 불안한 대만, 베트남과 섬나라인 일본보다 내륙과 이어지고 철강, 조선 산업이 발달한 한국에 공장을 두고 아시아의 허브로 삼으려는 마당에 가중치의 삭제는 해외기업도 원치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가중치가 삭제되면 글로벌 기업이 한국 진출을 검토하는 데 설득력이 떨어지고 선진기업의 기술 습득과 일자리 창출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무엇보다 다른 나라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강력한 규제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역행하려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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