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정적인 전력체계의 배반! RE100 달성 위해 한전 ‘집중 구조’에서 탈피해야
  • 정한교 기자
  • 승인 2023.0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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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중형에서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중심의 분산 발전으로 전환 노력 필요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에 있다. 지난 1990년 전세계 17위에 머물렀던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은 30여년이 흐른 2020년 미국과 일본 등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했다. 최근 산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업종의 산업군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제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RE100 가입을 선언하는 국내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부족한 재생에너지를 충당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utoimage]

전통적으로 제조업은 전력 소모량이 많은 업종이다. 지난해 구자근 의원실이 공개한 한국전력 산업용 전력 판매실적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전력 53만3,431GWh 중 절반인 25만2,362GWh를 제조업에서 사용한다.

국내기업들의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선언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사용하는 전력량은 많은데,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 중 지난해 한국전력이 발표한 ‘전력 다소비 기업 상위 30개사 판매 실적’에 따르면, 2021년 상위 30개사의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102.92TWh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18.41TWh, 뒤 이어 SK하이닉스(9.21TWh), 현대제철(7.04TWh), 삼성디스플레이(6.78TWh), LG디스플레이(6.23TWh), S-OIL(4.04TWh), LG화학(3.87TWh) 등의 순이다. 이에 반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21년 기준 50.65TWh에 불과했다. 전체 발전량의 8.3%가 재생에너지 비중이다.

2022년 4월 기준 35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했으며, RE100 회원들의 재생에너지전기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총 전기사용량 대비 재생에너지전기 사용량 비율이 45%를 넘어섰다. [사진=한국RE100협의체]

미래 위해 RE100 전진하는 기업, ‘현실’ 이유로 후진하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재생에너지 보급 계획을 기존보다 높여야 할 상황이지만, 오히려 정부는 ‘속도 조절’을 선택했다. 지난해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RPS)’ 하향 조정은 가뜩이나 부족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고민이 깊은 RE100 선언 기업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국내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이같은 행보에 “국내 재생에너지시장을 5년 뒤로 후퇴시키는 정책 방향”이라며, “인프라를 조성하고, 관련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뒤로 후퇴하는 행보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안”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재생에너지 업계 전반에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했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의 RE100 이행 우려에도 제10차 계획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RE100 가입 선언한 국내기업

산업부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1TWh이다. 2022년은 총 55.5TWh를 전망하고 있다. 현재 RE100을 선언한 국내기업 27곳의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이원영 위원은 당시 “RE100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제시하는 표준, 또는 인증을 거쳐야 한다”며,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원 비중에서 37%를 차지하는 바이오매스와 수력이 RE100에서 요구하는 지속가능성 기준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CDP에서는 ISO13065:2015, Green-e, LIHI 인증 등의 표준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바이오매스, 수력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바이오매스, 수력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준 등에 대한 조사 및 수요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RE100에서 요구하는 바이오매스, 수력에 대한 비중 조사 역시 없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우려를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 도입 등이 가시화되는 글로벌 정세를 감안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RE100 가입 기준인 연간 100GWh 이상 사용하는 전력 다소비 기업이외에도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는 중견, 중소 규모의 국내기업들도 제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RE100과 K-RE100 비교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고객 요금제 신설’, RE100 가입 기업에 치명타 날려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 이외에도 국내 RE100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은 또 있다. 바로 ‘한국전력’의 존재다. 우리나라는 한국전력이라는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성을 갖춘 전력망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여러 발전사들이 존재하며, 지역별로 분산 발전된 해외의 국가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안정적인 중앙집중형 전력체계가 재생에너지 확산 및 발전에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등 대규모 발전설비 중심의 중앙집중형 발전에서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소규모 발전설비 중심 분산 발전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분산에너지 활성화 방안 등 다양한 자구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한전의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대표적 행보가 바로 제277차 전기위원회에서 심의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고객 요금제 신설’이다.

신설된 요금제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면서 부족한 전력을 한전으로부터 조달하는 일반용‧산업용 고압고객을 상대로 적용하는 것으로 골자로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전의 이같은 행보에 기업, 개인 등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RE100을 위한 직접 PPA를 시행하면서 이탈하는 고객들로 인한 역할 축소를 막기 위해서라고 평했다.

RE100을 선언한 국내기업들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최근 온사이트(On-site) PPA 계약을 추진했거나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한전의 이러한 행보는 기업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기요금 절감이라는 효과를 기대하던 기업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K-RE100 가입 선언한 국내 기업

현재 국내 RE100 이행수단인 녹색프리미엄, 제3자 PPA, REC 구매는 모두 한전을 통한 구매 방식이다. 직접 PPA와 자가 발전만이 한전을 거치지 않는다. 기업 여건상 자가 발전만으로는 RE100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 전력구매계약은 필수인데, 한전은 자신들을 거치지 않는 구매계약에 엄청난 비용 부담을 떠안긴 것이다.

현재 한국형 RE100(K-RE100)에 참여 중인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은 일반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프리미엄’을 얹어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한전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는 녹색프리미엄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녹색프리미엄은 지속적으로 논란이 따라붙고 있는 수단이다. 재생에너지를 조달했다는 인증만 되지 온실가스를 감축했다는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들도 구매한 전기가 재생에너지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재생에너지를 산다는 의미가 가져가는 것이다.

결국 재생 가능한 전기 100% 사용이라는 본질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직접 PPA, 제3자 PPA, 자가 발전, REC 구매 등의 수단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한전의 이번 요금제 신설로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국내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이 직접 PPA를 통해 RE100을 이행하려는 추세가 증가하자 한전이 자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을 두려워해 요금제를 신설했다고 생각한다”며, “기업 이미지 제고, 친환경 기업으로의 도약 등의 효과를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던 국내 대기업들은 말 그대로 뒤통수 맞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국내기업 RE100 이행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는 많다. 그럼에도 국내기업들의 RE100 참여선언은 이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바이오로직스까지 RE100 가입을 선언하면서 국내에서 RE100 가입을 선언한 기업의 수는 27개다. K-RE100 가입 선언 기업은 157개에 달한다.

RE100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국내기업들의 노력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이 오는 10월부터 수입 공업품에 대한 탄소배출량별 관세를 메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내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CBAM 인증서 구매의무도 생긴다. 이제 국내기업들은 더 이상 RE100을 남의 일이나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시점이다.

국내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RE100이라는 쇼를 멈춰야 할 때”라며, “국내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합심해 RE100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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