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지프 '랭글러 4xe', 마초적 감성 물씬... 오프로더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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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지프 '랭글러 4xe', 마초적 감성 물씬... 오프로더의 진화
  • 노경민 기자
  • 승인 2022.08.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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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오프로더와 전기모터의 결합
동종 내연기관 모델과 차별화된 부드러운 가속감
저속 주행 시 정숙성 돋보여... 과속방지턱도 문제 없어
엔진 주행시 떨림, 소음 심해... 승차감보다 '감성'
전기모터만으로 32km 이상 주행 가능
휘발유+전기 합산연비 12.7km/L
협소한 2열, 첨단 주행보조장치 부족 아쉬워
사진=시장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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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동차의 전동화가 유행이라지만,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탑재한 오프로더를 상상할 수 있을까. 지프는 지난해 9월 랭글러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시스템을 탑재해 출시했다. 랭글러는 오프로더의 대명사로 꼽히는 모델이다. 기대 반 우려 반 심정으로 랭글러 4xe모델 운전대에 올랐다.

랭글러 4xe는 얼핏 봐서는 기존 랭글러 오버랜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흔히 '짚차'라 부르던 그 지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오버랜드 모델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다. 측면에 달린 지프 로고 배지와 오프로드를 인증하는 트레일 레이티드 배지, 테일게이트의 4xe 배지는 친환경 차량이라는 의미의 파란색을 띠고 있다. 일반 모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운전석 쪽에 'e'로고가 표시된 충전구가 있다는 점이랄까.

사진=시장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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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글러의 외관은 정통 오프로더 그대로다. 성인도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튀어나온 범퍼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거대한 수직 그릴과 넓은 보닛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큼지막한 사각 사이드 미러에 더해 측면 디자인 역시 직선이다. 후면 램프 역시 사각으로 트럭을 연상시킨다. 랭글러 4xe 외관에서 곡선 처리된 영역은 전면 램프가 유일하다.

랭글러 4xe의 차체 크기는 전장 4880mm, 전폭 1935mm, 전고 1850mm, 휠베이스 3010mm에 달한다. 운전석 문을 열자 '딸깍' 소리가 들린다. 차에 오르기 위해선 계단을 오르듯 받침대를 밟은 채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줘 올라타야 한다. 문을 닫을 때도 철판이 '텅'하고 울린다. 랭글러의 거친 감성이 오감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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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올라 우선 전동식 파워톱을 열었다. 천정이 사라진 듯한 개방감이 매력적이다. 다만 한여름에 열기에는 정수리가 뜨겁다. 좌석은 편안하지만 시트 포지션을 잡는게 힘들다. SUV가 아닌 트럭을 몰아본 사람들만이 체감할 수 있는 시트 포지션이다. 

실내는 직관적이다 못해 투박하다. 랭글러 4xe 전용 계기판은 전력의 충전량, 출력 등을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속도는 계기판 중앙에 숫자로만 표기된다.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한 8.4인치 디스플레이는 하이브리드 일렉트릭 앱이 탑재돼 엔진과 전기모터 사용, 회생 제동과 같은 에너지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창문 조절 버튼과 2륜·4륜을 제어할 수 있는 기어봉이 위치한다. 트렁크는 상단과 하단이 따로 열린다. 기본 용량은 744L이지만 2열을 접으면 1909L까지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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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계기판이 켜지면서 고주파의 모터 소음이 귓가를 울린다. 랭글러는 '부르릉'하는 굉음을 내며 시동이 걸리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지프 브랜드 차량은 거칠고 단단한 이미지다. 편안함이 아니라 감성으로 타는 차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랭글러 4xe는 그런 이미지를 모두 깨버린다.

우선 가속페달을 밟자 거대한 차체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랭글러 4xe는 제원상 전기로만 32km 주행이 가능하다. 배터리는 2열 시트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시트가 살짝 높아진 대신 트렁크의 적재 공간이 줄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다. 랭글러 4xe는 삼성SDI 360V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국내 완속 충전 표준 커넥터인 AC 단상(5핀)만 사용할 수 있으며, 평균 충전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사진=시장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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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를 함께 사용할 경우 주행가능거리는 최대 630km까지 늘어난다.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은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성능을 낸다. 여기에 두 개의 전기모터와 17.3kWh 용량의 배터리를 추가하면 최고출력 375마력, 최대토크 64.9kg.m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휘발유와 전기 모드 합산 복합 연비는 12.7km/L(솔린 9.2km/L, 전기 2.4km/kWh)이다.

랭글러 4xe는 하이브리드, 일렉트릭, e세이브 등 세 가지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성능 확인을 위해 도로로 나갔다. 공차 중량 2345kg의 차체가 강력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가속력은 여느 전기차와 다른 느낌이다. 저속 주행에서 정숙하면서도 안정적이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큰 충격이 없다.

하이브리드 모드는 엔진과 모터를 적절히 운영한다. 전기 모드로만 43~45km를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솔린 엔진이 개입하자 랭글러는 거친 내면을 드러낸다. 가속력은 만족할 수준이지만 엔진 떨림과 소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포장 도로에서도 주행감이 거칠다. 고속에서는 핸들을 그대로 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직진을 하기 어려웠다. 핸들을 조금씩 움직이며 차선 중앙을 유지해줘야 한다.

사진=시장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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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주행이 어렵다면 오프로드를 달려보기로 했다. 남양주 송라산과 포천의 계곡을 오르며 흙길과 자갈길을 달려봤다. 비가 온 뒤 미끄러운 길인데도 흙길을 잘도 오른다. 문제는 타이어다. 공도에 맞춰 장착한 타이어가 차량 성능을 받쳐주지 못해 가끔 미끄러진 것이다. 하지만 랭글러 4xe는 타이어 성능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나아갔다. 깊게 패인 경사진 흙길은 물론이고 일반 차량이면 엄두도 내기 어려울만큼 큰 암석덩어리도 가볍게 타고 올랐다. 오프로더의 강자 랭글러의 강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산을 오르다보니 바퀴의 반이 잠길 정도의 개울을 만났다. 전날 비가 많이 온 탓에 물이 불어났다. 돌아서 내려갈 것인지, 모험을 할 것인지 판단이 필요했다. 고민도 잠시 지프 브랜드의 힘을 믿고 앞을 향해 내달렸다. 랭글러 4xe는 최대 30인치 깊이의 계곡을 통과할 수있다. 이 차는 역시 오프로드가 제맛이다. 작은 바위를 밟고 올라서 차체가 뒤뚱거리는 상태에서도 랭글러 4xe는 물을 튕기며 아무 일 없다는 듯 개울을 건넜다. 흰 차체에 튄 흙탕물이 되레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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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글러 4xe를 몰고 얼마나 달렸는지 가득찬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가 뜬다. 오프로드를 그렇게 달렸으니 당연하지 않을까. 실제 클러스터에 표기된 평균 연비는 리터당 9.5km에 불과했다. 다만 도심과 고속도로만을 주행했을 때 평균 연비는 15km를 넘어섰다.

랭글러 4xe는 자상함을 품은 마초와 같다. 실제 창문 조절 버튼이 센터페시아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는 등 차문을 모두 탈거한 채 주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차량이 전기 모터를 단 것이다. 거친 오프로더에 전동화가 더해지면서 주행감은 부드러워졌다. 랭글러 4xe가 가는 곳이 길이다.

사진=시장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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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있다. 협소한 2열 공간, 부족한 편의장비 등은 여전히 불편하다. 2열에는 열선시트가 적용되지 않고, 어댑티드 크루즈컨트롤(ACC) 외 최신 주행보조장치도 없다. 수납공간은 앞좌석 문 옆에 그물망이 달려있는 등 일반 SUV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차값은 오버랜드 8340만원, 오버랜드 파워탑 8690만원에 달한다.

이 가격을 주고 시트 조절을 수동으로 하고 풍절음도 큰, 불편한 차를 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헤리티지를 고수하면서 지프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지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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